지난 겨울 나는 일기를 열심히 썼다. 별 뜻 없이 고른 악보 용지 위에 적지 않은 글자가 적혔고 그 아래 쌓인 상념은 그것보다 많았다.
오선 위의 글자들은 꼭 음표 같았고, 문득 이 일기 자체가 악보가 될 수 있을까, 온전히 시각적인 것이 사운드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글자들은 음표로 치환되며, 매체 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시각적인 방식으로 청각적 요소 위에 얹혔다. 영상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사이의 이러한 직역이 어떤 방식의 변형을 야기하는지 실험한 결과이다. 5분에 걸쳐 선형적으로 연주되는 어떤 맥락은 번역된 모든 것이 읽히는(혹은 들리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악보는 겨울부터 봄까지 지나쳐왔던 심상들을 다룬다: 기억, 후회, 고요, 파도, 결국에는 모두 흘러가는 것, 그럼에도 되돌아오는 것에 대해.
영상과 함께 제작된 책은 선형적인 영상을 직설적으로 지면에 번역한 긴 판형으로 계획되었다. 읽는 이는 각 장의 악보를 펼쳐보며 영상 속에서 짧게, 혹은 길게 스쳐 간 심상들을 자세히 더듬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