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의 손짓을 새롭게 편집, 조합, 치환, 해석해
끝나지 않는 손짓의 향연을 만들어낸다.
1. 포즈
Pose 와 Pause
우리는 자세나 일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포즈’(pose)라고 부른다.
피사체는 상품이나 자신의 모습이 가장 매력적이고 돋보일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하곤 한다.
한편, ‘포즈’(pause)는 잠시 멈추어 정지된 상태를 일컫는다.
‘포즈’는 ‘pause’의 상태로 사진 속에 머물러있다.
잡지 속 포즈를 취하며 자신을 뽐내는 손은 사진에서 주인공이 되지만,
손과 손 사이의 빈틈을 공략해 보면, 우리는 또 다른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손’과 ‘하트’ 둘은 모두 ‘pause’의 상태로 ‘pose’를 취해 각각 모델이 되기도, 배경이 되기도 한다.
2. 대화 속 제스처
제스처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대화에서 사용된다.
사람들은 제스처를 통해 솔직함을 드러내기도, 거짓으로 감정을 꾸며낼 수도 있다.
이 행위를 단순한 손과 몸의 움직임을 넘어 대화 속의 은밀한 힘겨루기 장치로서 바라보자.
상대방의 의사를 묻고,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어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손짓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를 방어하고 말과 말 사이의 시간을 끌기 위해 움츠러드는 손짓도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의 ‘힘겨루기’ 게임에서 닫힌 손짓은 공격적인 손짓에 잠식 당하기도 한다.
손의 상태를 점으로 끊어서 나타내고 점과 점을 잇는 선을 삭제해 보면 보이지 않는 '손짓’의 힘겨루기가 중첩되어 일어난다.
3. 그림자 놀이 동물
손을 포개고, 깍지를 끼고, 손가락 사이사이를 통과하고, 주먹을 쥐고, 손과 손을 맞잡는 손짓과
빛이 만나 납작한 ‘그림자 동물도감’이 만들어진다.
이빨 빠진 악어, 기다란 귀를 가진 다람쥐, 코가 납작해진 낙타.
그림자 도감 속에는 마치 전설 속의 용처럼 실재하지 않는 새로운 모습의 동물들이 가득하다.
그림자 동물은 동물이 아닌 존재처럼 보이기도 해 관람자로 하여금 시각적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손의 곡선과 유연함은 컴퓨터 화면을 통과하면서 뻣뻣하고 각진 한 칸짜리 픽셀로 납작해진다.
그림자 도감에서 동물들은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 그림자 그 자체가 된다.
그림자 1. _AME_
그림자 2. W_LF
그림자 3. SN_IL
기존의 이름은 생략과 재편집을 거쳐 발음된다.
[에임] / [웰프] / [스닐]
4. 권력과 지시
손은 의사 표현 수단의 장치이다.
가리켜 보이기도,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현하기도, 두 손을 모아 공손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의미의 손짓은 언제나 평등하지 않다.
독재자의 손짓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손짓이 가진 힘과 무게는 다르다.
반가움의 징표가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방향을 가리키는 손짓이 누군가에게는 숨통을 조여오는 권력의 산물로 해석된다.
권력의 해상도를 낮추게 되면 보이지 않는 힘도 인지할 수 없지만
높은 해상도에서 손의 주인을 추적해 보면 그 손짓은 한순간에 권력의 장치가 된다.
독재자의 손짓을 낮은 해상도로 점차 소멸시킨다면 그들의 권력과 힘의 존재 여부도 달라진다.
5. 수화 숫자 주사위
손짓은 목소리이다.
수화는 음성 언어를 대신해 시각언어로서 기능하며 일차 언어로 분류된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수용하는 여러 숫자의 형태를 손(수화)으로 치환해 보자.
주사위에는 개수를 나타내는 점 대신 숫자를 나타내는 수화가 숫자의 크고 작음을 결정지을 것이고,
고속도로의 속도 제한 표지판은 빨간 원과 검은색 손가락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것이다.
이렇게 손짓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대체하게 되면 관련된 사물 또한 새로운 형태로 탄생하게 된다.
수화라는 손짓이 이미지를 대신하여 기능하는 주사위의 도면은
도형의 형태는 온데간데없이 손짓 간의 중첩만이 존재한다.
어쩌면 주사위는 정사각형의 입체물이 아닌 납작한 상태의 종이가 될 수 있다.